전시장이 공론장이 될 때:《국가 아방가르드 유령》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2019.3.27.-5.26. 아르코미술관

매주 토요일 도심에서는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2년 전, 탄핵이 선고되고 태극기 부대의 숫자가 비웃음을 살 정도로 적었을 때, 식자들은 한국 현대사를 지배해 온 개발 독재 권력의 망령이 드디어 자멸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보수 정당의 지지율은 30%대로 돌아왔고 시위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개발 독재 시대에 형성된 한국의 망탈리테(mentalité)는 너무나 강력해서, 죽은 줄 알았으나 결국 살아 돌아왔다. 그야말로 ‘유령’이다.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은 건축과 도시의 입장에서 그 ‘유령’, 여전히 한국 사회에 남아있는 1960년대의 영향을 다룬다. 전시는 1965년 설립된 국영 건축회사인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가 주도한 네 개의 프로젝트인 여의도 종합개발계획, 엑스포70 한국관, 세운상가, 구로 한국무역박람회를 중심으로 그 당시 건설된 건축과 형성된 도시가 현재의 서울에 여전히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1960년대는 모순적이고 길항하는 힘들이 각축하던 시기다. 민주화와 산업화가, 평등의 욕구와 개인주의화의 욕망이, 자유와 국가 권력이 뒤섞여 사회를 지배했다. 그러한 사회에서 건축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도시 개발의 야욕을 가진 국가와 모더니즘적 이상을 가진 건축가는 묘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협력했다. 그 결과 근대도시 서울은 국가 권력의 욕망과 건축가의 욕망이 서로 뒤엉켜 기이한 풍경을 산출했다.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은 그 동조와 불화의 관계를,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 서울을 이해해보고자, 나아가 비판해보고자 한다.

전시의 구성은 당시의 자료를 수집한, 그러나 완전한 자료를 구성하지 못한 ‘부재한 아카이브’와 이를 토대로 현재의 작가들이 제시하는 작업, 나아가 이러한 자료와 작업을 토대로 포럼 등을 진행하면서 “비평적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장소”로서 ‘도래하는 아카이브’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아카이브/작업/공론장의 구성은 명확하고 안정적인 얼개를 형성한다. 아카이브를 통해 과거를 추적하고, 작업으로 이를 현재화하고, 공론장을 통해 미래를 모색하는 구성은 안정적이고 다소 뻔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범생’ 같은 전시가 지루한 리듬 속에서도 반짝일 때는 작업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들이다. 서현석의 <환상도시>와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근대 도시 서울을 꿈꾼 건축가의 비전이 모더니스트 건축가 자신에게 국한된 이상일 뿐, 서울을 사는 이들의 삶과 유리된 것이었음을 드러낸다. 한편 바래(전진홍·최윤희)와 김성우의 작업은 1960년대 건축의 문제를 과거에 한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현재의 맥락으로 가져오면서 현재의 구로를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세운상가 재개발 문제를 지나치지 않는다. 바래의 <꿈세포>는 1968년 경제 번영을 꿈꾸며 최초의 한국무역박람회가 열린 구로의 시간을 확장하여, 경제 번영의 꿈과 이촌 향도의 꿈, ‘코리안 드림’을 아우르며 현재의 구로를 조명한다. 김성우의 <급진적 변화의 도시>는 세운상가의 과거와 현재를 서술하면서, 이 지역의 공공적 가치가 시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이 시점에 “민간의 개발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면, 어렵게 구축한 세운상가의 공공영역이 고층 빌딩들 사이에 고립됨과 동시에 50여 년간 서울 도심에 구축된 산업영역이 대형 오피스 건물에 의해 밀려나는 것 또한 시간문제”라고 지적하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개발 정책을 비판한다.

정적인 아카이브가 무게 중심을 잡고 있는 어둡고 조용한 화이트큐브의 전시는 겉보기와 달리 꽤 날카롭고 강한 비판의 말을 담고 있다. 이처럼 입장을 밝히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야말로 사회 안에서 예술이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화이트큐브라는 이격된 공간은 오히려 강력한 사회 비판의 발화가 가능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벌어진 을지로 재개발 문제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을지로의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시위와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은 매주 전시 연계 포럼을 진행하고 있으며, 세운상가를 주제로 하는 포럼도 포함되어 있다. 미술 전시장이 말 그대로 ‘공론장’이 되기를,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퍼블릭아트』 2019년 5월호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