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화된 세계를 빠져나가는 힘 – 윤민화·최태윤《트랙터》

윤민화·최태윤
《트랙터》
패리지갤러리
2020.12.11. – 2021.2.6.
*퍼블릭아트 2021년 3월호 게재

유니클로에서 옷을 사고, 이케아에서 가구를 사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삶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할까? 레디메이드 상품이 공기처럼 일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시작된 아주 오랜 일이지만, 이제는 차원이 다른 레디메이드의 시대가 열렸다. 제조·유통·판매를 통합한 대형 브랜드의 평범하고 무난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의 제품은 소비자에게 쉬운 선택지가 되었다. 속옷부터 패딩까지 모든 종류의 옷이 구비된 유니클로에서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고르는 것으로 쇼핑은 완결된다. 이제 소비자는 완전하게 구성된 ‘유니클로 세계’ 혹은 ‘이케아 세계’ 안에서 서로 다른 상품을 조합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개성을 구현한다. 과연 현대의 소비자는 이 세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조각가 최태훈과 큐레이터 윤민화의 협업으로 꾸려진 전시 <트랙터>는 바로 이러한 제품들, 즉 규격화된 사물을 둘러싸고 작용하는 힘을 주제로 한다. 서로 다르게 작용하는 힘으로서 ‘명령↔자동반사’, ‘반응↔역반응’, ‘중력↔장력’, ‘관성↔저항’, ‘고정↔이동’, ‘정의↔번역’이라는 여섯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조각가는 레디메이드 사물로 조각을 선보이고, 큐레이터는 산업 디자인과 사물, 그것을 경험하는 사회에 관한 글을 작성했다. 여섯 가지 주제로 세분화되었지만 반대로 작용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힘들 사이의 긴장감이 전시장 전반을 감돈다. 

최태훈은 여섯 가지 주제에 대응하는 조각 작품 여섯 점을 선보인다. 각 작품은 모두 유니클로를 입은 마네킹과 이케아 의자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 전체를 아우르는 그래피티가 전시장 벽, 바닥, 천장에 그려진다. 유니클로를 입은 마네킹은 쇼핑몰 매장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전시장에 놓인다. 역동적으로 의자를 밀거나, 천장에 매달리거나, 물구나무를 선 마네킹은 자신에게 산업의 논리로 부여된 문법을 벗어나려는 의지로서 힘을 보여준다. 그 힘은 역동성과 즉흥성을 지닌 채 경계 없이 표현된 그래피티로 가시화된다. 한편, 서로의 준거가 되지만 만나지 않는 ‘강과 다리’로 자신들의 관계를 정의하는 데에 걸맞게 윤민화의 글은 최태훈의 작품에 한정하지 않고 산업사회의 상품과 디자인을 둘러싼 여러 힘을 다룬다. 산업사회가 제시하는 표준 규격에서 벗어난 몸, 사물의 사용법에서 벗어난 인체의 움직임, 기성품을 새로운 조형적 재료로 사용하는 현대미술과 같이 기성품에 부여된 문법과 자꾸만 마찰하는 힘들을 제시한다. 

그 중심에는 의자가 있다. 윤민화와 최태훈은 특히 의자라는 사물이 인체 표준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며, 사용자로 하여금 특정한 사용 방식을 요청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작업을 전개한다.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케아 의자는 핵심적인 기능과 디자인으로 저렴한 가격의 만족을 약속한다. 널리 쓰이는 상품명이 일반명사로 쓰이는 것처럼 이케아 의자는 스툴의 대명사로, 접이식 의자의 대명사로 누구나 경험해본 제품이 되었다. <트랙터>는 바로 그 사물, 누구나 경험해본 산업사회의 표준 시스템을 대변하는 사물로서 이케아 의자를 제시한다. 너무나 익숙한 이케아 의자의 생김새는 보는 이로 하여금 지금껏 수없이 경험한 앉기의 행위를 떠올리게 하지만, <트랙터>는 결코 그 경험에 안주하지 않는다. 마네킹은 의자에 앉는 대신 그것을 밀거나 들거나 덮으면서 생경한 상황을 제시한다. 이케아 의자는 앉기의 경험을 상기하게 하는 것으로 관객을 기존의 질서로 잡아당기는 한편, 작가가 연출한 새로운 조형적 상황은 그러한 질서에 편입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그렇게 두 힘은 팽팽하게 맞선다. 

그 결과 전시장에는 모종의 긴장감이 존재한다. 표준화된 사물이 강요하는 크기, 취향, 움직임, 생활 양식과 같은 총체적 질서와 그로부터 탈주하려는 의지 사이의 당김과 밀어냄이 팽팽하다. 작가와 큐레이터는 그 팽팽한 긴장을 가시화함으로써 규격화된 표준적 삶의 양식을 넘어서는 힘을 상상한다. 어쩌면 모든 작가는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표준화되지 않은, 유일한 사물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산업사회의 질서에서 벗어난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각과 글로 단단하게 엮인 전시 <트랙터>는 그러한 힘에 실체를 부여하고 가시화함으로써 그 탈주를 가속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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