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치(apparatus)로서 책, 그리고 미술가 –《교-차-점 交叉點》

교-차-점 交叉點
참여작가: 소민경, 이은지, 조상은, 홍예준
기획: 주슬아, 정윤선
3Q, 2021.7.9.-7.31.
*도록 게재 원고

잠깐 영화라는 매체를 생각해보자. 디지털 영화가 아니라 필름 영화말이다. 필름 영화는 1초에 24프레임으로 구성된 필름을 영사기를 통해 빛을 투과하면서 움직이는 영상을 만든다. 35mm의 작은 필름이 영사하는 세계는 과거 인류의 이야기부터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까지 무궁무진하다. 여기서 영화에 비평적으로 접근하는 데는 두 가지 다른 방법이 있다. 하나는 ‘텍스트 비평가’의 방법이다. 이들은 화면으로 펼쳐진 서사를 비평한다. 텍스트를 보는 그들에게 영화가 작동하기 위한 물질적 조건으로서 장치는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텍스트가 영화의 물질적 조건에 관심을 갖는다. 이들 ‘매체 탐구자’는 필름 빛, 관객 같은 장치에, 혹은 장치가 텍스트에 미친 영향에 비평적으로 접근한다. 

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학비평가, 혹은 서평가, 연구자, 이론가 등 책을 주요 매체로 비평하는 이들은 대부분 책의 물질적 조건이 아니라 책의 텍스트를 다루는 ‘텍스트 비평가’다. 책의 경우는 영화보다도 훨씬 더 텍스트 중심적이기 때문에 책이라는 물질적 조건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다. 때때로 책의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될 때조차, 그것은 구조적 차원의 책의 물성보다는 주어진 물성을 다루는 방식에 관한 논의에 가깝다. 한편, ‘매체 탐구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책에 접근한다. 이들은 책이라는 매체의 물성의 본질에 관해 비평적 사유를 전개한다. <교-차-점 交叉點>은 바로 이 관점에서 책에 접근한다. 책이라는 매체의 물질적 조건은 어떻게 변형되고, 확장되고, 전유될 수 있을까? 기획자는 참여 작가에게 책과 책이 꽂히는 책장이라는 조건을 제시하고, 네 명의 참여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책이라는 장치를 풀어낸다. 그들은 모두 책이라는 매체를 비평적으로 전유하는 ‘매체 탐구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반듯하게 덮여져 있는 책을 보자. 우리는 책을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는 선형적인 순서를 가진 매체로만 이해해왔다. 마치 시간에 따라서 흘러가는 영화를 보듯이,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시간을 부여할 때 책은 그 안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그러나 조상은은 반듯하게 덮여져 있는 책 자체를 바라본다. 시간과 움직임을 부여하지 않고 하나의 사물로 압축된 책은 종이가 겹겹이 쌓여서 두께가 있는 직육면체의 종이더미다. 그 겹겹이 쌓인 종이 안에서 글자들은 서로 겹쳐져서 뒤엉켜 있을 것이다. 조상은은 이러한 책의 조형적 측면을 자신의 작업으로 가져온다. 캔버스 위에 여러 겹으로 쌓인 물감은 그 자체로 책의 페이지가 되어서 하나의 책을 만들어낸다. 겹쳐진 글자의 아크릴 패널은 마치 덮인 책을 투시하여 글자가 쌓인 책의 내부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이 겹침, 이 미세하게 쌓아올려진 겹침은 책이 결코 단순한 평면이 아니라 두께가 있는 평면임을 환기한다. 이때 두께를 가졌다는 것은 여러 장의 종이가 묶여서 책등을 가진 책이 되었다는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글자가 기입된 종이는 글자가 없는 종이와는 다른 두께를 갖는다. 이것은 단지 미세한 물리적 무게가 더해졌을 뿐만 아니라 텍스트라는 의미론적 무게를 갖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로써 조상은은 책의 물성을 환기하고 책이 갖는 물리적 두께와 의미론적 두께를 시각화한다.  

또한 책은 종이로 이루어져 있다. 종이는 온도와 습도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책은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기도 하고 뒤틀리기도 하고 때로는 윤이 나기도 한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시간과 호흡하면서 변화한다. 이은지는 책이라는 매체를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형상화한다. 먹을 흡수한 장지가 책장을 뒤덮거나 밖으로 길게 늘어뜨려져 있다. 장지가 먹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마치 물을 흡수하는 식물을 닮았다. 부분 부분 다른 농담으로 스며든 먹은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상태로 변화한다. 이러한 종이가 기둥과 벽을 감싸며 자라는 넝쿨처럼 책장을 뒤덮고 있는 모습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다. 한 페이지를 넘기면 다음 페이지가, 또 다음 페이지가 이어지는 책처럼 종이는 이어지고 또 이어져서 전체를 이룬다. 그리고 그 덩어리는 그냥 덩어리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 숨 쉬는, 천천히 호흡하는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낱장의 페이지가 이어져서 거대한 세계를 만드는 책의 구조는 이은지의 책장에서 낱낱이 펼쳐져서 다시 새로운 세계로 태어난다. 

한편 책은 그저 낱장의 종이로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제본 방식으로 정성스럽게 묶이고 포장된다. 소민경은 책이라는 매체가 텍스트라는 기호를 감싸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그림을 포장지로 덮고 감싸는 소민경의 회화는 텍스트를 완성된 형태로 묶어내는 책의 제작 방식을 닮았다. 그는 동시대에 유통되는 이미지를 선별하여 이를 조합하듯이 화면을 구성한다. 그러한 이미지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의미가 부여된 상징으로서 기호화 되어있다는 점에서 책의 텍스트와 유사하다. 소민경은 이러한 이미지를 조합하여 회화를 그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이미지를 복사하고 프린트하여 회화를 포장한다. 여기에는 소민경의 회화가 책의 원리와 교차하는 두 가지 지점이 있다. 하나는 여러 번 복제되어 여러 점의 작품이 만들어질 가능성을 내재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본을 볼 수 없고 오직 복제로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소민경의 회화는 단 한 점으로 존재하며, 그 한 점이 복제된 포장지로 감싸여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원본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그의 회화는 책과 구분되는 조형 작업으로서 오히려 책의 원리를 환기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책을 단단하고 완고한 것으로서 고정된 형태로 간주한다. 수정과 편집이 용이한 디지털 매체와 다르게 책은 고정적이고 확고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홍예준은 가볍고 가변적인 것으로 책을 상상한다. 그는 책을 완전히 펼쳐서 공간에 흩뿌린다. 공간에 펼쳐진 책은 경계 없이 공간에 섞여들어 달라붙는다. 책장은 해체되어 바닥에 펼쳐지고 투명하고 가는 오브제들이 조심스럽게 올려진다. 창문에 덧붙어 있는 연약한 필라멘트로, 전선과 구분이 안 되는 얇은 낚싯줄로, 공기의 흐름에 따라 흔들리는 오브제로 공간에 편재한다. 그러므로 홍예준의 책은 단단한 글자로 쌓아올린 성이 아니라 연약하고 투명하게 흩어진 기호들의 공간이다. 투명한 것과 불투명한 것들의 교차는 공간 안에 새로운 리듬을 만들고 시시각각 변하는 그림자로 이루어진 서사를 형성한다. 홍예준의 이러한 조형적 시도는 책에 대한 구태의연한 사유와 결별하고 책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제시한다. 

결국 <교-차-점 交叉點>에서 책은 하나의 공간이 된다. 네 명의 참여 작가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책의 물질적 조건에 반응하여 새로운 조형적 가능성을 제시하고, 책이라는 한정되고 닫혀있는 매체는 공간적인 매체로 펼쳐진다. 책의 표지가 떨어져 나오고, 낱장의 페이지가 줄줄이 이어지고, 기호로서 텍스트는 공간에 흩뿌려지면서 책은 완전하게 공간화된다. 그렇게 책의 물질적 조건은 비평적 탐구의 대상으로서 미술의 매체가 된다. 

여기서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글의 서두를 필름 영화로 시작했다. 필름 영화야말로 디지털 영화와 달리 그 물질적 기반으로부터 매체에 관한 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더 이상 필름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디지털 영화가 필름 영화를 대체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필름 영화의 물질적 조건을 말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구시대적이다. 그런 와중에, 책이라는 또 다른 낡은 매체를 이토록 집요하게 탐구하는 ‘매체 탐구자’는 그야말로 현대미술가답다. 현대미술은 한편으로는 시대의 최전선에서 진보적인 사유를 전개하지만 한편으로는 늘 낡고 오래된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종이책이라는 낡은 매체의 가능성이 소진된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이들은 그 낡은 매체 사이에서 섬광처럼 빛나는 가능성을 잡아내어 새로운 조형적 탐구를 시도한다. 책과 텍스트의 세계에 속한 이들 중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이 낡은 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에 미술가들은 한 발짝 다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