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전》에 덧붙이는 글 – 《장식전》

장식전
오래된 집, 2020.10.19. – 11.13.
* 전시 도록 게재

– 장식이 제 가치를 인정받는 평행우주의 세계, 혹은 미래의 어떤 세계에서

10월 19일, 장식사에 한 획을 그을 전시가 열렸다. 성북동에 위치한 작은 가옥을 장식한 이 전시는 획기적인 장식 스타일로 장식계를 충격과 혼란, 논쟁에 빠뜨렸다. 전시를 주도한 장식큐레이터 이상엽은 아직은 낯선 신예 큐레이터지만, 개성적이고 신선한 감각으로 자신만의 장식을 기획하는 것으로 장식애호가 사이에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는 다섯 명의 장식가 김수연, 김혜원, fldjf studio as boma, 소민경, 이유성이 기존 장식계의 스타일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감각의 장식을 선보였다.

첫 번째 장식가 이유성은 ‘동적인 장식’으로 집안을 장식한다. 그는 장식이 애초부터 동사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장식은 고정되거나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계절에 따라 커튼을 바꾸고, 기분에 따라 액세서리를 바꿔 끼우는 것처럼 행위하는 것이며, 변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의 장식에서 이러한 생각은 움직임에 천착하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공간 입구에서 우리를 맞아주는 <Welcome!>은 현관문에서 흔들리는 도어벨을 닮았다. 가늘고 거친 금속 막대는 하트와 별을 모티브로 하여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형상을 구현한다. 그와 함께 입구에서 우리를 맞는 또 다른 장식 <vita-more>는 집안에 평화와 행복을 불러오는 목판 장식을 닮았다. 대개의 목판 장식이 성스러운 문구로 복을 부르는 것과 달리 <vita-more>는 강아지와 고양이라는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동물로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방문객은 이유성의 따스하고 친근한 환대에 둘러싸여 집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한편 이유성이 집안에서 선보이는 장식은 더욱 역동적이고 생생하다.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두 장식 <잠자리 스피드>와 <Dandelion acceleration>은 단단하고 묵직한 목재를 베이스로 하지만, 작고 세밀한 뒤틀림으로 날렵하고 빠른 움직임을 담아낸다. <잠자리 스피드>는 거칠고 단단한 체리나무에 움직임의 상징으로서 흘러가는 날짜와 돌아가는 바퀴를 새긴다. 그러나 단단한 나무판 위에서 날짜와 바퀴는 움직이지 않은 채 고정되고, 이로써 그 장식 위에서 움직임과 정지는 묘한 경계를 오간다. 또한 부츠와 크록스 샌들의 결합으로 구성된 <Dandelion acceleration>은 발이라는 가장 역동적인 신체 부위를 단단한 나무 장식으로 고정하면서 움직임을 품는다. 반대 방향을 향하는 두 발은 그 자체로 움직임의 의지를 일시적으로 붙잡는 형상을 구현한다. 결국 이러한 ‘동적인 장식’은 고정된 것으로서 장식이라는 통념을 깨고 장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두 번째 장식가 김수연은 ‘불필요한 장식’으로 집안을 장식한다. 그는 불필요하게 덧붙이는 것이야말로 장식이 가진 가장 훌륭한 기능임을 설파한다. 그는 축하와 기념의 자리를 장식하는 식물과 밋밋한 공간을 채워주는 식물로 집 안을 장식한다. 그가 제작한 난초는 자연의 녹색을 그대로 재현하여 고상하면서도 부드럽고, 우아하면서도 다정하다. 특히 종이라는 가볍고 자연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식물의 본성을 장식에서도 구현한다. 그가 안마당에 장식한 종이 넝쿨 <Plant series>는 차갑고 건조한 콘크리트 벽에 자연의 숨결을 불어넣어 편안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로 바꿔준다. 장식가의 자연주의적 신념에서 비롯되었을 이러한 장식은 삭막한 도시 생활에서 자연의 풍요와 안락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준다.

더불어 김수연은 집 안에 기둥 장식을 추가함으로써 허전한 공간의 균형을 맞추고 시각적 다채로움을 추가한다. 진짜 기둥을 완벽하게 닮은 이 장식은 모사 기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정을 모르고 보는 사람이라면 진짜 기둥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섬세하게 만들어진 이 쌍둥이 기둥은 불필요하게 덧붙어서 공간을 풍부하게 장식하고,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는 시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세 번째 장식가 김혜원은 ‘공예적 장식’으로 집안을 장식한다. 공예적인 것을 폄하하는 구닥다리 사고방식은 오늘날 거의 사라졌지만,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는 그러한 구식 사고방식을 완전히 소탕하겠다는 듯이, 공예의 우아함과 품위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사진을 자수 도안으로 변환한 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여 장식 회화를 완성한다. 디지털 사진의 픽셀은 기품 있고 고상한 바느질의 땀으로 변환된다. 이로써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건조한 디지털 이미지는 장식가의 고귀한 손의 움직임이 담긴, 독창적이고 우아한 장식으로 재탄생한다. 이제 한강 다리, 산과 하늘, 고가 도로, 아파트 같은 일상의 풍경은 자수만의 고유한 질감과 색감을 통해 생생하고 자연스러우며, 오히려 실제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김혜원은 그동안 장식의 테두리마저 자수로 표현하는 자수 액자로 자신만의 독특한 공예 세계를 펼쳐왔는데, 이번 전시에서 그는 그 기술의 숙련도가 완전한 성숙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특히 자수로 표현한 이미지 부분의 빳빳함과 대비되는 부드러운 뜨개실로 만든 뜨개 액자는 그 기술의 절정에 있다. 이번에 다시 제작하여 새롭게 선보이는 장식 <계단을 내려오는 고양이>가 바로 그 작품이다. 조심스럽게 계단을 걷고 있는 노란 고양이가 있는 이 장식에는 장식가의 따뜻한 손길과 위트가 담겨 있다. 장식의 중심이 되는 고양이 모형은 동글동글한 모양과 부드러운 분위기로 도자기 장식의 계보를 잇고 있다. 그 가장자리는 파스텔 톤의 파란색 뜨개실로 꾸며져 더욱 따뜻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뜨개실은 올록볼록한 구름 모양으로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떠오르게 한다.

네 번째 장식가 소민경은 ‘덧씌우는 장식’으로 집안을 장식한다. 그는 대상을 꾸미고 치장하는 것이라는 장식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여, 대상을 감싸고 덧씌운 포장 장식을 선보인다. 그는 선물보다 화려하고 허황되어서, 더 많은 주목을 끄는 포장이야말로 장식의 정수이며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또한 정체를 가리고 힌트만을 주면서 기대와 긴장을 극대화하는 포장이 실은 우리를 가장 행복하고 설레게 하는 것임을 상기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는 겹겹이 포장을 덧붙여 대상을 숨기는 동시에 슬며시 암시한다. 한 겹의 종이로 혹은 격자 형태의 실로 대상은 가려지고 드러난다. 그러나 종국에 그는 더 이상 그 안을 궁금해 하지 않기를 바라며, 사실은 이를 덮고 있는 포장 장식이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는 그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소민경은 장식 회화 <hall 자리 town 자리>로 새로운 이미지 장식을 시도한다. 세밀하게 꾸며진 촛대 장식, 디테일을 더해주는 고리 장식, 아름답게 주름 잡힌 패브릭 장식은 사물과 풍경을 이어주고, 이미지를 꾸미고 치장한다. 여기서 그는 장식 그 자체를 평면 이미지로 그리고, 그 평면 이미지가 장식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 시험한다. 장식을 그린 장식은 평평한 흰 벽을 이중으로 장식함으로서 개념적 측면에서 그 어떤 장식보다 화려하고 과장된다. 그는 이러한 개념적 유희를 통해 장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장식에 관한 기존의 개념을 확장한다.

다섯 번째 장식가 fldjf studio as boma는 ‘스며드는 장식’으로 집안을 장식한다. 하나의 방 안에 갇혀 관객을 기다리는 미술품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는 공간 곳곳에 편재하 는 장식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새로 공개한 패턴 ‘fldjf 공명 패턴 unit #20_1oCt_01’은 전시장 여기저기에서 파편적으로 반복되어 등장한다. 옅은 푸른빛에서 시작해 붉은빛이 감도는 크리스털로 끝나는 패턴은 클래식한 아르누보식 넝쿨무늬와 모던한 추상 형태의 무늬가 오묘하게 섞여있다. 강하게 반짝이는 크리스털로 구성된 이 패턴은 어떤 공간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숨은 공간마저 빛나게 한다. 이때 장식은 공간 여기저기에서 반복되며 계속해서 자기 모습을 바꾼다. 기준이 되는 견본 패턴은 있지만, 패턴은 반복될 때마다 조금씩 변화하고 엇나간다. 오히려 그들은 견본을 반복하기를 거부하고 각자가 새로운 패턴으로 탄생하기를 기도한다.

한편 fldjf studio as boma의 신작 <fldjf ribbon2 + 창문장식 2020: 레버카 손의 행복했던 지중해 시간압축 포장. Feat. 푸른 리본 나는 정직하다>는 조명 간판의 형식으로 장식의 외연을 확장한다. 그가 자신의 지난 드로잉을 꾸며서 만든 이 장식은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며 빛난다. 제목 그대로 지중해의 바다를 닮은 푸른빛은 라이트박스의 도움을 받아 은은하게 빛난다. 푸른빛 위로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리본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순간이 영원히 깃들도록 묶인다.

올해는 장식사에 여러모로 뜻 깊은 해가 될 것 같다. 완연한 성숙미를 풍기는 중진·원로 장식가의 전시와 더불어 이처럼 신선한 충격을 주는 신예 장식가의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그동안 별다른 활약이 없던 남류 장식가의 전시도 여럿 열려서 눈길을 끈다. 그보다도 장식을 다양한 관점에서 새롭게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한때 비주류 문화로 치부되던 타투, 피어싱 같은 신체 장식은 이제 엄연히 장식의 한 장르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한 신체 장식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학계와 비평계에서도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시각 장식뿐만 아니라 언어에서 사 용되는 수사와 기교를 연구하는 문학 장식 연구도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장식 영역의 확장과 심화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장식이 다른 분과에 기생하던 세계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우리 세계에서는 현실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