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림 개인전
SATELLITES: 위성들
갤러리 룩스, 2020.11.5-11.29
*도록 게재 원고
매주 토요일은 로데오거리에서 친구들과 노는 날이다. 약속 시간은 오후 1시, 약속 장소는 분수광장. 만나서 하는 일은? 팬시문구점 가서 스티커 구경하고, 즉석떡볶이랑 볶음밥 먹고, 노래방 가서 놀고, 캔모아 가서 파르페 먹고, 스티커 사진 찍고, 맥도날드 가고. 뭐 이런 거였다. 서울이랑 다를 게 별로 없다. 경기도의 신도시는 서울에 있는 건 다 있으면서 더 편리하게 되어있다는 게 어릴 적 내 생각이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나는 시절이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시작으로, 이를 열화 복제한 로데오거리가 전국에 퍼져있다. 우리사회는 ‘로데오’라는 정체가 불분명한 단어를 번화가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로 받아들여서, 아예 행정구역명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명품 거리로 시작했지만, 서울 외 지역에서 대부분 로데오거리는 그 지역의 중심가를 뜻한다. 특히 경기도에서는 서현역 로데오거리, 수원역 로데오거리처럼 지하철역 주변으로 형성된 상권을 뜻한다. 주로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는 쇼핑몰이 있고, 그 주변으로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카페부터 노래방, PC방, 당구장 같은 유흥시설에 안경점, 병원, 미용실 같은 생활 필수 업종까지 모든 게 짬뽕되어 있다. 바로 이 도시, 서울을 베꼈지만 어딘지 조금씩 부족하고 어설픈 도시, 결국 서울이라는 행성을 바라보고 있는 위성도시가 추미림의 《SATELLITES: 위성들(이하 위성들)》의 주인공이다.
전시장 벽 중앙에 서울이 있다.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도시 서울은 말 그대로 핑크빛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위성도시가 펼쳐진다. 낮에는 엄마와 아이들이 분주하다가 밤이 되면 더욱 왁자지껄해지는 도시, 반듯하게 구획된 도로와 아파트 단지가 빼곡한 도시, 커다란 인터체인지를 지나야 만나는 도시가 펼쳐진다. 그래픽은 캔버스를 넘어서 전시장 벽면으로 이어지고 공간 전체를 하나의 우주로 경험하게 한다. 하나의 우주, 서울과 그 위성들의 우주가 펼쳐진다.
추미림은 도시의 풍경을 추상화한 그래픽 이미지로 표현한다. 아파트 단지는 사각형의 배열로, 인터체인지 도로는 곡선의 교차로, 도시의 조경은 동그란 형태로 추상화된다. 신도시 풍경은 마치 컴퓨터로 프린트한 것처럼 반듯하고 깔끔한 그래픽 이미지로 변환된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형식적으로는 정제되어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형태 안에는 끈적끈적한 감정이 들어있다. 가장 내밀한 이야기가 가득 담긴, 경험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는 장소를 절제된 이미지로 재현한다. 그는 자신이 자란 도시의 풍경, 결코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풍경을 애착의 눈길로 그린다.
<Swimming pool after school>은 수영장이 있는 아파트 단지의 풍경이다. 그것은 단지 수영장이 있는 아파트 단지의 독특한 풍경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가 방과 후에 시간을 보내던 경험된 장소로서 수영장과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다. 이처럼 《위성들》 속 그곳은 그저 서현역의 랜드마크인 쇼핑몰이 아니라 친구를 기다리던 만남의 장소로서 쇼핑몰이고, 그저 경기도로 진입하는 인터체인지가 아니라 피곤한 퇴근길에 버스 차창 밖으로 본, 집에 왔다는 안도와 기쁨이 있는 인터체인지다. 그러므로 추미림의 그림에서 도시는 그저 도시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는 경험의 장소다. 그의 추상 그래픽은 자신이 경험한 도시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결과이며, 인상이 아닌 감정적인 표현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도시의 풍경은 단지 묘사되지 않는다. 도시의 풍경은 곧 삶의 경험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도시를 경험의 장소로 재해석하는 것은 <Castle> 연작에서 강화한다. 도시의 아파트를 닮은 아크릴 패널은 칸칸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시의 풍경은 아이콘을 닮은 추상화된 그래픽으로 표현된다. 종이 위에 펜과 마커로 그려진 장난스러운 이미지는 어릴 적 다이어리를 꾸미면서 그렸던 그림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내용뿐만 아니라 표현 형식으로도 어떤 시절을 소환하고 기억하게 한다. 이때 그가 재현하는 도시는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그 장소에서 있었던 경험으로 구체화된다. 그에게 도시는 인스타그램의 하트로, 손이 닳도록 쥐던 연필로,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로 형상화된다. 그에게 도시 풍경은 이러한 경험이지, 도시의 물리적 경관 자체가 아니다. 그 경험 자체가 장소가 된다.
이러한 도시 풍경은 <Windows>에서 영상이 되어 움직인다. 아크릴 패널은 도시를 추상화한 그래픽 모양으로 비워져있고, 그 비워진 틈으로 도시의 풍경이 흘러간다. 도시는 작품 제목 그대로 차창 밖 풍경처럼 흘러간다. 흘러가는 풍경은 마치 옛날 플래시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어딘지 매끄럽지 않게 움직인다. 그 매끄럽지 않은 움직임이 흘러간 시간과 기억을 소환하고, 그렇게 그 움직임의 빈틈은 각자의 기억에서 불러오는 서사로 채워진다. 추상화된 그래픽의 나머지를 경험의 이야기가 채우는 것처럼, 끊어질 듯 부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동영상의 시간은 공백으로 남은 채 다른 이야기로 채워지기를 기다린다.
이러한 도시의 경험, 그 경험의 시간은 기원으로서 현재의 나를 구성한다. 《위성들》은 그 시간을 되돌아봄으로써 자신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약간의 우울을 동반하지만 그것을 압도하는 유쾌함과 명랑함을 가득 채우고서 지나간 시간을 성큼성큼 걸어간다. 이번 전시의 아이콘 <Bubble walking>은 푸른빛의 투명한 방울에 쌓여서 걷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왕복 세 시간씩 출퇴근을 해도 씩씩하게 걸어가던 과거의 모습이면서, 여전히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모른 채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명랑한 현재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기원으로서 도시와 현재를 살아가는 도시를 누빈다. 밝고 환한 마음으로. 전시 곳곳에 숨어서 명랑하게 걷는 <Bubble walking>의 소녀, 사랑스러운 고양이 발뭉치와 끝없이 샘솟는 하트 같은 것들이 사실 이 전시의 진짜 주인공이다. 그 씩씩하고 명랑한 모습, 따뜻한 애정의 시선이 《위성들》 곳곳에서 우리에게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다.
청소년기를 보낸 신도시를 떠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서울에 살면서 비로소 내가 보고 자란 도시가 사실은 서울을 베낀 것이구나, 그것도 아주 못나게 베낀 것이구나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서울에 너무 익숙해져버려서, 다시 그 열화 복제된 도시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가끔 그곳에 가면, 도시는 어느새 ‘조상님 신도시’가 되어서 시간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가로수는 굵고 커졌고, 낡은 건물 위로 곳곳을 덧대어 리모델링한 부분이 보인다. 그럼에도 로데오거리의 번잡함과 산만함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심각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 장소는 쉽게 담담해질 수가 없다. 못생긴 거리 위에 젊음과 활기가 끈끈하게 달라붙어서 미워도 미워할 수가 없다. 명랑하고 씩씩했던, 에너지 넘쳤던 시절이 그 도시에 함께 있다.